테니스의 묘미는 절망이다

지난 일요일, 네 시간 동안 테니스를 치고 발톱 하나를 다친 것 같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아 멀찍이서만 살펴본다. 빠진 것도 아니고, 완전히 새까맣게 죽은 것도 아닌 듯하다. 일단 잘 덮어두어야겠다. 몇 달 뒤 밑에서 새 발톱이 자라면, 지금의 발톱은 제 할 일을 다한 듯 떨어져 나갈지도 모른다.

발톱까지 희생해가며 나는 왜 테니스를 치는 걸까.

함께 치는 사람 중에는 팔이 아프다는 사람이 많다. 진통제를 두 알씩 먹고 코트에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대체 우리는 왜 이러는 걸까.

테니스는 사람을 자주 절망시킨다. 이상하게도 바로 그것이 테니스의 묘미다.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도 테니스는 따로 배워야 한다. 몇 년을 배워도 되는가 싶다가 다시 안 된다. 어제는 잘 맞던 공이 오늘은 라켓 가장자리에 걸리고, 이제 알 것 같던 동작이 다음 날이면 다시 낯설어진다. 그렇게 수없이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시간을 지나야 한다.

그런데 매일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다가도 어느 날 문득 알게 된다. 처음 서 있던 곳에서 꽤 멀리 와 있다는 것을.

꾸준히 친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게 몸 안에 쌓였다가 어느 날 조금 더 빠른 발과 단단한 스윙으로 나타난다. 테니스는 들인 시간만큼 몸에 흔적을 남기는 운동이다.

이제 중학생이 된 딸에게 공 몇 개를 던져주며 스트로크 연습을 시켜본다.

이 아이가 정말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하면, 뜻대로 되지 않는 긴 시간을 어떻게 지나갈까. 잠시 망설여진다.

“지금은 라켓 면이 열려서 공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지만, 아주 많이 치고 나면 어느 날 강한 포핸드가 나올 거야. 오늘 친 공은 없어지는 게 아니야. 다 네 몸에 남아.”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스스로에게 말한다.

뭐든지 테니스 하듯 하면 된다고.

잘되지 않는 날에도 다시 라켓을 들고, 조금 잘된다고 다 배운 것처럼 굴지 않고, 모든 경기를 진 다음 날에도 다시 코트에 서는 것. 그렇게 오래 하다 보면 어느 날 누군가 말한다.

“원래 운동신경이 좋으신가 봐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 우습다. 그 사람이 보지 못한 수많은 헛스윙과 네트에 걸린 공과 패배한 날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재능처럼 보이는 것 중에는 사실 오래 포기하지 않은 시간이 많다.

적어도 내가 테니스에서 배운 것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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