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학 수업의 강의 하나하나가 하나의 이야기가 되도록 나름대로 신경을 쓴다. 사람은 설명보다 이야기에 더 오래 반응하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천국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르칠 때,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로 말씀하셨다.
선형 시스템을 가르칠 때면 나는 한국의 옛이야기 하나로 수업을 시작한다.
옛날 어느 마을에 가난하지만 마음씨 좋은 사람이 살았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이웃을 불러 음식을 나누어 먹곤 했다. 어느 날 그에게 식사를 대접받은 길 가던 스님이 고마움의 표시로 뒤주 하나를 선물했다.
그런데 이 뒤주는 보통 뒤주가 아니었다. 콩 한 되를 넣어두면 다음 날 두 되가 되어 있었고, 쌀 두 말을 넣으면 네 말이 되어 있었다. 그 뒤주 덕분에 그는 마을 사람들을 실컷 먹이고도 양식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를 눈여겨보던 욕심 많은 부자 양반이 밤중에 뒤주를 훔쳐 자기 집 안방에 가져다 놓았다. 뒤주를 옮기느라 지친 부자는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성질 사나운 아내가 처음 보는 뒤주를 발견했다.
“이게 뭐지?”
아내가 안을 들여다보다가 그만 뒤주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잠시 후 뒤주에서는 똑같은 아내가 둘이 되어 나왔다. 한 사람도 감당하기 벅찼던 부자는 이제 두 아내와 살아야 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참으로 놀랍다. 어린아이들에게 선형 시스템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야기가 끝나면 나는 학생들에게 묻는다.
“이 뒤주에 콩 한 되와 쌀 한 말을 함께 넣으면 다음 날 무엇이 나올까?”
대답하기조차 민망할 만큼 쉬운 질문이다. 콩 두 되와 쌀 두 말이 나온다. 그런데 이 질문에 정확히 대답할 수 있다면 선형 시스템의 핵심은 이미 이해한 셈이다.
콩 한 되를 넣었을 때 두 되가 나온다면, 콩 두 되를 넣었을 때는 네 되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입력을 두 배로 하면 출력도 두 배가 된다. 이것이 동차성이다.
또한 콩과 쌀을 따로 넣었을 때의 결과를 알고 있다면, 둘을 함께 넣었을 때의 결과도 각각의 결과를 더하여 예측할 수 있다. 이것이 가산성이다.
동차성과 가산성이 성립하는 시스템을 우리는 선형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결국 이 신기한 뒤주는 모든 것을 정확히 두 배로 만들어내는 선형 시스템인 셈이다. 아내까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형 시스템을 가르칠 때마다 나는 이 뒤주 이야기로 시작하고, 수업이 끝날 때 다시 뒤주로 돌아온다. 교과서의 언어로 “동차성과 가산성을 만족하는 시스템”이라고만 설명하면 학생들은 다음 날 잊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뒤주에 콩과 쌀을 함께 넣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면 선형성의 의미도 함께 기억할 수 있다.
“쉽게 설명할 수 없다면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그래서 내 강의 노트는 전공책의 내용을 다시 정리해놓은 것이 아니다. 책에 적힌 정의를 내가 이해한 언어로 다시 풀어 쓴 기록에 가깝다. 수업을 하다가도 나는 종종 학생들에게 말한다.
“이건 책에 없는, 우리끼리만 쓰는 말이야.”
그런 다음 어려운 전공 용어를 우리만의 쉬운 말로 바꾸어본다.
스토리텔링은 어려운 개념을 보기 좋게 꾸미는 장식이 아니다. 낯선 개념이 기억 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는 방식이다. 공학은 숫자와 공식으로 이루어진 딱딱한 학문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교수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는 그 이야기를 찾아내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건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나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개념을 설명할 수 있는 시대에 교수의 강의에는 어떤 힘이 남아 있을까. “이제는 답보다 질문이 중요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말 자체가 이미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세 가지를 생각한다.
첫째, 강의 하나하나를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다. 학생들의 기억에 남고, 그 기억이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지게 하는 이야기 말이다.
둘째, 여러 과목에서 따로 배운 지식을 연결하여 하나의 큰 그림을 보게 하는 것이다. 유체역학을 가르치면서 코딩을 하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열역학을 꺼내 보인다. 제어공학을 가르칠 때는 공식만 계산하지 않고 동적 모델링에 충분한 시간을 쓴다.
“지금까지 나무를 하나씩 배웠으니, 이제 그것들을 모아 숲을 만들어보자.”
셋째, 어려운 전공 개념을 나만의 언어로 바꾸어 유치원생에게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쉽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배우는 모든 것이 유치원에서 하던 놀이처럼 단순하게 보이는 순간, 비로소 그 개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내 강의는 이런 식이다.
“유치원에서 왜 점 잇기 놀이를 했는지 아니? 놀랍게도 그건 너희를 공학자로 기르기 위한 선행학습이었어. 오늘도 우리는 점 잇기를 할 거야. 다만 대학에 왔으니 조금 업그레이드해보자. 이번에는 점이 눈에 보이지 않아. 점에 관한 정보만 가지고 보이지 않는 점들을 찾아 이어야 해. 그 선이 바로 근궤적, 루트 로커스야. 어때? 이제 조금 해볼 만하지?”
어려운 공학 개념도 뒤주 하나와 점 잇기 놀이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가 학생들의 머릿속에 오래 남아, 언젠가 또 다른 개념과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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