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공학 가르치기

미국에서 유학을 마친 뒤, 작은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요즘처럼 조기 영어 교육을 받는 일은 꿈에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처음 알파벳을 배웠고, 콩글리쉬를 하는 선생님들에게 영어를 배웠다. 회화 학원에 다니거나 어학연수를 다녀온 적도 없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문법과 독해만 공부하다가 덜컥 미국 대학의 교단에 서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컸다. 첫 수업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수업 내용을 준비하는 일보다, 그 내용을 영어로 학생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한번은 수업의 주요 내용은 아니었지만, 설명을 이어 가다가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불쑥 나왔다. 평생 ‘피타고라스’라고만 발음해 왔는데, 갑자기 미국 학생들 앞에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잠깐 머뭇거리다가 영어처럼 들리게 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피라고라-스’라고 혀를 조금 굴려 말했다. 순간 학생들의 눈에 떠오른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뭐라구요?’

수업이 끝나고 영어로는 ‘Pythagorean’을 ‘파이태고리언’에 가깝게 발음한다는 것을 알았다.   공학 수업에서는 이런 ‘영어 아닌 영어’를 자주 만난다. 수학 공식과 과학 법칙, 기호와 단위의 이름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영어권에서는 전혀 다르게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내용은 익숙한데 그것을 가리키는 소리는 낯설었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지식을 새로운 언어로 다시 배워야 했다.

지금도 나는 완성된 교수라기보다 그 성장통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910년 파리 소르본대학교에서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찬사는 실제로 경기장 안에 들어선 사람의 몫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준비를 모두 끝낸 뒤 교단에 선 것이 아니었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익숙하게 알고 있던 수학 용어조차 학생들 앞에서는 낯선 말이 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것처럼 규모가 작은 대학에서는 한 교수가 여러 과목을 맡아야 한다. 나 역시 서로 다른 분야의 과목을 여섯 개, 일곱 개씩 가르치곤 했다. 당연히 그 모든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이 학생들 앞에서 드러날까 늘 좌불안석이었다. 한 과목을 가르치면서도 그다음 수업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했다.

교수인 친구들과 만나면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젊은 교수는 모르는 것도 공부해서 가르치고, 중년 교수는 자기가 아는 것만 가르치고, 노년 교수는 기억나는 것만 가르친다.”

2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쳐 보니 그 말에 제법 일리가 있다. 젊은 시절의 나는 알고 있는 것을 모두 가르쳐야 좋은 교수라고 생각했다. 하나라도 더 설명하고, 하나라도 더 담아 주고 싶었다.  학생들이 어디까지 이해했는지 살피기보다 내가 준비한 내용을 끝까지 전달하는 데 마음이 급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이제는 많은 것을 덜어 내고, 학생들이 반드시 이해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한다. 아는 것을 모두 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을 남기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르치는 데도 뺄셈이 필요했다.

인생의 많은 일이 그렇다. 준비가 다 될 때까지 기다리면 그 순간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일단 시작하고, 여기저기 부딪치면서 배워 가는 수밖에 없다.

어쩌면 준비란 시작하기 전에 모두 끝내 놓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먼저 경기장 안으로 들어간 뒤, 실수하고 배우며 오랫동안 계속해 나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교수가 된 뒤, 천천히 교수가 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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