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 서면서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이거 외우지 마세요.”
공학에는 수많은 공식이 등장한다. 그러나 나는 학생들에게 그 공식을 모두 외우라고 하지 않는다. 시험에 필요한 공식은 핸드아웃으로 제공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정리한 내용을 한 페이지에 적어 와서 보면서 시험을 치게 한다.
아주 예전에는 아예 오픈북 시험을 주기도 했다.
“무엇을 보든 신경 쓰지 않겠다. 다만 옆에 앉은 친구에게만 물어보지 마라.”
문제는 내가 직접 만들었으니 책이나 인터넷을 뒤져도 그대로 베낄 답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식을 찾는 것은 허용하되, 어떤 공식을 어떻게 적용할지는 학생이 스스로 판단해야 했다. 한 학년 위 선배에게 물어본다 해도 지난해 배운 내용은 이미 아리송할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하기가 어려워졌다. 모든 문제의 답을 제공한다는 서비스가 있고, 인공지능은 풀이 과정까지 순식간에 만들어 낸다. 그렇다고 인공지능도 풀 수 없을 만큼 시험을 무한정 어렵게 만들 수도 없다.
어쨌든 공학 시험은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것을 머릿속에 담아 두지 않은 채 치르게 된다.
스무 명이 친 시험에서 스무 개의 다른 답이 나오기도 한다. 답을 쓰는 데만 한 페이지를 훌쩍 넘겨 다음 장까지 이어지는 학생도 있다.
시간도 사실 제한이 없다. 나에게는 쉬워 보였는데 학생들이 어려워하면 시간을 더 늘려준다. 시험 감독을 하다가 나는 가야하니 끝나면 오피스 문 밑으로 답안을 넣고 가라고 하고 미리 떠난다. 그 다음 날 한 학생이 밤 10시까니 남아서 시험을 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오후 3시에 시작한 시험이었다.
시험이 끝나면 학생들은 서로에게 몇번 문제 답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하다가 모두들 패닉에 잠긴다. 그리고 나서는 자신이 얼마나 부분점수를 받을 수 있을지를 계산하느라 바쁘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이 귀엽다.
공대생들은 그렇게 자란다.
수업 시간에는 가끔 콩나물 이야기를 한다. 한국에서는 진부한 이야기지만 여기서는 제법 참신한 예화가 된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으면 물이 전부 밑으로 흘러내리지.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보여. 그런데 그렇게 계속 물을 주다 보면 콩나물은 자라 있어.”
콩나물이 어떻게 자라는지 잘 모르는 미국 학생들은 웃으며 묻는다.
“그러면 우리가 콩나물, 빈 스프라우트예요?”
“맞아. 너희가 콩나물이야.”
공식도 잊고, 풀이 방법도 잊고, 시험이 끝나면 자신이 무엇을 썼는지도 잊을 것이다.
그래도 다음 시험에서는 답이 한 줄쯤 더 길어진다. 부분점수를 받을 만한 생각도 조금 더 많이 적혀 있다.
그 정도면 콩나물이 조금 자란 셈이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