뺄셈의 선물

아이들이 집을 비우면 나는 가끔 그 방에 들어간다. 여행을 갔거나 친구 집에서 며칠 지내는 날이 기회다. 아이가 있을 때 손을 대면 버리면 안 되는 물건과 버려도 되는 물건을 두고 끝없는 협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침대 밑을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무언가 나온다. 언제 벗어 던졌는지 모를 양말, 땀에 절어 구겨진 셔츠, 다 마신 물병. 책상 서랍에는 몇 장 쓰다 만 노트와 굳어 버린 테이프, 어디서 받은지도 모를 종이들이 들어 있다. 몇 년째 한 번도 펼쳐 보지 않은 책도 있다.

나는 버려도 되는 것이 분명한 것들부터 하나씩 꺼낸다. 빈 물병과 쓰레기는 버리고, 빨 것은 세탁기에 넣고, 제자리 없는 것에는 자리를 만들어 준다. 그러고 나면 이상하게도 방이 넓어진다. 실제 넓이는 그대로인데 숨을 쉴 공간이 생긴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늘 무엇을 해 줄지를 생각했다. 무엇을 먹일까. 무엇을 가르칠까. 어떤 경험을 시켜 줄까. 무엇을 사 줄까. 좋은 엄마란 끊임없이 무언가를 더해 주는 사람인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들이 커 가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어쩌면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일 가운데에는 주는 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이들을 학원에 많이 보내거나 이것저것 배우라고 재촉하는 엄마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늘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집 아이들이 피아노도 배우고 운동도 하고 이런저런 수업을 다니는 것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 아이가 넷이다 보니 하나하나 다 시켜 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가끔은 의심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빈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교육에 대한 내 생각인지, 아니면 해 주지 못한 것을 괜찮다고 여기려는 마음인지.

아직도 그 답은 모른다.  다만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는 조금씩 믿게 되었다.

덜어 주어서 생기는 빈자리도 선물이라는 .

그리고 아이에게는 가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아이들은 심심해야 한다.

그 빈자리에는 시간이 들어간다. 찾느라 허비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무언가를 계속 해내느라 허둥대지 않아도 되는 시간. 무엇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아볼 수 있는 시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막상 방학 내내 아이가 뒹굴고 있으면 나도 못마땅하다. 심심하면 뭐라도 할 줄 알았는데 하루 종일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것 같다.  나라고 잔소리를 안 했겠는가.

“엄마가 뭐 하라고 하면 하던 것도 하기 싫다고요.”

아이의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내가 아이에게 하는 말 가운데 반은 아이를 위한 조언이 아니라 내 불안을 달래기 위한 잔소리였다는 것을.

아이들을 믿어 보기로 했다.  물론 무지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심심해질 자유까지 빼앗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이 방을 치우고 나면 가끔 문 앞에 서서 방을 한 번 바라본다. 새로 사다 놓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전보다 무언가를 더 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이들은 내가 자기 방에 들어와 이것저것 치우는 건 싫어한다. 그런데 어디 다녀와 깨끗해진 방을 보면 또 좋아한다.  자기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듣고 알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채워 주는 엄마는 아닐지도 모른다. 대신 필요 없는 것들을 조금씩 덜어 주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빈자리는 내가 다시 채우지 않고,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 두고 싶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줄 수 있는 뺄셈의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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