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몇 번, 출근하기 전 6~7킬로미터를 달린다. 달리면서 생각한다. 나는 왜 달릴까.
몸을 깨우기 위해서, 좀비 세포를 없애기 위해서, 뇌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체지방을 태우기 위해서, 무릎을 더 튼튼하게 하려고. 뛰면서 이것저것 이유를 짜내다 보니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안 뛰면 못 뛸까 봐.
빨리 달리는 것도 아니다. 슬로우 조깅이다. 그런데 시작하기 전에는 늘 오늘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죽을 것처럼 힘들면 언제든 멈춰도 돼.’
그렇게 나 자신과 약속하고 시작한다. 사실 가장 힘든 것은 처음 몇백 미터다. 몸은 무겁고 숨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죽을 것 같은 지점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목표한 거리를 다 뛰고 나면 휴, 하고 안심한다.
아직 뛸 수 있다. 다행이다.
체력장 5급에, 달리기라면 전교 꼴찌를 하던 내가 지금 이렇게 달린다는 사실이 아직도 신기하다. 초등학교 6년 동안 운동회 달리기에서는 늘 꼴찌였다. 여섯 명이 뛰면 육등. 상을 받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딱 한 번만이라도 꼴찌를 벗어나고 싶었는데 결국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나는 단 한 번도 달리기 연습을 해본 적이 없었다. 타고나지도 않았는데 연습도 안 했으니, 못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 흑역사를 가진 나를 지금 만난 사람들은 내가 원래 운동신경이 좋은 줄 안다.
하면 할 수 있고, 안 하면 못한다.
그러고 보면 재능이 없어서 못한다고 생각했던 일들 가운데에는, 사실 해보기도 전에 놓아버린 것도 있었는지 모른다.
가장 중요한 재능은 ‘계속 좋아하는 능력’이 아닐까.
처음에는 조금만 해도 눈에 띄게 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무리 해도 제자리인 것 같은 때가 온다. 그때도 계속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조금 더 멀리 가는 것 같다.
내 삶을 돌아보면 가장 아쉬운 것도 그것이다. 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연구를 시작할 때는 늘 신이 났다. 그런데 벽에 부딪히고 성과가 더디게 나오면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리곤 했다.
석사논문을 쓸 때 수정진동자로 가스 센서를 연구했다. 수정진동자 표면에 박막을 입혀 가스를 감지하는 연구였는데, 실험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고 연구하는 일이 점점 싫어졌다. 나중에는 수정진동자라는 말만 들어도 싫을 정도였다.
실험이 잘되는 날에는 중간에 멈출 수가 없어 정말 밤을 새우기도 했다. 새벽별이 뜰 무렵 기숙사로 걸어 돌아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며칠 뒤, 그 결과는 다시 재현되지 않았다. 겨우 논문을 마치고는 다시 쳐다보지 않았다.
한참 뒤, 유럽의 어느 박사학위 논문에서 수정진동자를 다시 만났다. 반갑지는 않았다. 오히려 오래전에 덮어둔 숙제를 누가 다시 책상 위에 올려놓은 기분이었다.
내가 싫다고 놓아버렸던 수정진동자를 그 연구자는 더 깊이 파고들었다. 진동 주파수의 변화만 보던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질이 흡착될 때 생기는 에너지 소실(dissipation)까지 측정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렇게 측정의 신뢰성을 높였고 결국 회사까지 세웠다. 그걸 보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벽에 부딪혀 ‘이건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안 되는 게 아니라 내가 더 깊이 들어가지 않았던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당장의 결과에만 급급했다. 왜 이러는지 오래 들여다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 일을 좋아하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내게 부족했던 것은, 잘되지 않는 동안에도 그곳에 머물며 계속 좋아하는 재능이었다.
그래서 오래전 과학고에 들어갔을 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이제야 조금 다르게 들린다.
“자네들은 자기 머리가 좋아서 여기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재능이다.”
그때는 이미 잘하는 아이들에게 더 열심히 하라는 말로 들었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하면 선생님은 어쩌면 오래 하는 힘을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계속하는 것도 능력이다.
오늘도 머리도 빗지 않고 눈곱도 떼지 않은 채 일단 체육관으로 향한다. 머리를 질끈 묶고 운동화를 신고 인도어 트랙에 선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결국 또 트랙 위에 서서 첫걸음을 뗀다. 시작은 늘 힘든데,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생각한다.
아, 나는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계속 좋아하는 것이 진짜 재능이라면, 적어도 이것 하나만큼은 나에게도 재능이 있는 셈이다. 마라톤 대회에 가면 어디 숨어 있었나 싶을 만큼 잘 달리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온다. 그 사이에 서 있으면 괜히 주눅이 든다. 저 사람들처럼 달려야 러너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아니다. 나는 이미 러너다. 빨리, 멀리, 잘 달려서가 아니라, 오늘도 달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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