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만 들려주고 싶었다

친정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데 품에 안긴 아이가 애앵 하고 울었다.

“아이고, 셋째가 우나 보다.”

그제야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아니, 엄마. 나 넷째 낳았어. 딸이야. 오늘 새벽에 낳아서 지금 병원이야.”

나는 임신 기간 내내 넷째가 생겼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말하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아이 셋을 낳고 동분서주하며 사는 것을 늘 걱정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 도와주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했고, 셋이나 낳았으니 이제는 그만 낳으라고 여러 번 신신당부했다. 넷째가 생겼다고 말하면 엄마는 기뻐하기에 앞서 나부터 걱정할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또 낳으려고 하니, 네 몸은 괜찮겠니,아이 넷을 어떻게 키우려고 그러니…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딸이 힘들까 봐 하는 말이었다. 나는 무슨 소리를 들어도 괜찮았다. 이미 어른이었고, 내가 한 선택이니 걱정도 잔소리도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뱃속의 아이에게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에 누군가 한숨을 쉬는 것도, 걱정부터 앞세우는 것도 싫었다. 이 아이에게만큼은 처음부터 축하와 축복의 말만 들려주고 싶었다.  누구도 걱정이나 염려를 입에 올리기 전에 내가 먼저 아이를 안고 말해 주고 싶었다.  우리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네가 태어난 것은 큰 축복이라고.

나를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들은 내가 아이를 넷이나 낳았다는 사실을 의외로 여긴다. 나는 원래부터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남의 아이를 보면 달려가 안아 주거나, 아이와 노는 것을 특별히 즐기는 사람도 아니었다. 나 자신도 내가 네 아이의 엄마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직접 아이를 낳고 보니 내가 몰랐던 사람이 내 안에 있었다.

내가 상처받는 것은 견딜 수 있어도 아이가 상처받는 것은 견디기 어려웠다. 나를 향한 말은 흘려들을 수 있었지만, 아이를 향한 말에는 온몸으로 반응했다.  지금도 임신을 한 사람을 보면 그 상황이 어쨌든 축하의 말만 건넨다.   그 말은 그 엄마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아이에게 하는 말이고, 그 예비 엄마는 벌써 자기 아이가 축하받는 것을 본능적으로 더 좋아할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넷째 아이가 태어난 날에도 그랬다.  임신 사실조차 말하지 못할 만큼 엄마의 반응을 걱정했지만 태어난 딸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쁘던지 세상에 다 말하고 싶었다.

“엄마, 나 넷째 낳았어.”

품속의 작은 아이가 다시 울었다. 아마 그 울음이 아이가 세상에 알린 첫 번째 자기소개였을 것이다.

잠시 말이 없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아이고, 얘가 미쳤구나. 어떻게 또 키우려고….”

예상대로 엄마의 첫마디는 축하가 아니라 걱정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마웠다.

엄마가 걱정한 사람은 갓 태어난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또다시 밤잠을 설치며 아이를 키우고, 아침이면 출근해야 할 딸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미 훌쩍 커서 네 아이의 엄마가 된 나를 엄마는 여전히 보호해야 할 자기 아이로 보고 있었다.

나는 내 아이에게 걱정이 아닌 축하만 들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날 비로소 알았다.

엄마도 오래전부터 나에게 같은 마음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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