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물 묻히는 삶

한국에 가서 오랜 친구들을 만났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오래된 친구들은 금세 예전으로 돌아간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 대부분은 아파트 앞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 먹고, 김치도 직접 담그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순간 생각했다. 그럼 두세 달에 한 번씩 배추 한 박스를 사다가 김치를 담그는 나는 뭐지?  차마 아이들 머리까지 집에서 깎아준다는 말은 하지도 못했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 공부를 잘하고, 과학고에 가고, 카이스트를 가고, 유학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평생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 줄 알았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드라마 속에서 나 같은 이력의 여성들은 대개 조금 까탈스럽다. 집안일에는 별 관심이 없고, 차갑고 아이를 많이 낳지도 않는다. 누군가가 집안일을 대신해 주는 삶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그런데 현실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엄마가 한번은 동네 아는 분에게 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우리 딸은 어디를 나와서 미국에서 교수를 하는데 아이가 넷이랍니다.”

그러자 그분이 물었다.

“그럼 아이들은 시댁에서 봐주겠구먼?”

“아니요. 친정은 바다 건너 멀고, 시댁도 미국 땅이 넓다 보니 멀어서 직접 키워요.”

“그럼 가사도우미가 있겠구먼?”

“아니요. 그것도 없이 직접 살림하고…”

그 말을 듣던 분이 결국 말했다고 한다.

“예끼, 이 사람아. 거짓말도 작작 하슈.”

엄마도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 줄 알았던 나는 아이를 넷이나 낳았고, 모유수유를 했고 웬만한 것은 직접 해 먹이며 키웠다. 어른들의 도움도 거의 없이 살다 보니 조금씩 자급자족하는 사람이 되어 갔다. 밥을 하고, 김치를 담그고, 치킨도 튀기고,  감기나 배탈은 병원 대신 치료하고, 아이들 머리를 자르고, 옷을 수선하고, 가구를 조립하고,  집안에 고장 난 것이 생기면 일단 들여다본다.

한 번은 집의 히터 팬이 고장 났다. 사람을 불러 고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먼저 뚜껑을 열었다. 오래된 팬을 떼어내고 필요한 부품을 찾아 주문하고, 전기 배선을 다시 연결하고, 수명이 다해 가는 커패시터도 교체했다.  말로 하면 이렇게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오래된 나사는 녹과 먼지에 찌들어 꿈쩍도 하지 않고, 팬이 기계 밑에 있어서 쪼그리고 앉아 먼지를 다 마셔가며 일을 해야 하고 맞는 부품을 사려면 사양도 계산해야 한다.

공학을 전공해서일까. 나는 무언가 고장 나면 먼저 생각한다.  ‘들여다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   한국에서 살았다면 아마 평생 해보지 않았을 일들을 미국에서 살면서 참 많이 하게 되었다.  사실은 인건비가 무지 비싼 미국의 사정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무엇을 고치시고 나무를 자르고 빌딩을 올리는 몸을 쓰는 모든 분들을 존경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  해보지 않으면 당연하게 생각되겠지만 세상을 뚝딱뚝딱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책상 앞의 사람들보다 더 진짜같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잘 산다는 것을 ‘아무것도 직접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손을 쓰지 않는 삶이 잘 사는 삶일까.   

손에 물을 묻히지 않고, 누군가가 밥을 해주고, 고장 난 것은 사람을 불러 고치고, 피부과에 다니며 나를 잘 관리하는 삶. 물론 그런 삶도 좋다.  아니 솔직히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직접 무언가를 만들고, 고치고, 배우고, 몸을 쓰며 사는 삶도 꽤 재미있다.

나는 요즘 나 자신을 조금 거창하게 ‘르네상스 우먼’이라고 생각한다.

공학을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한다. 두 언어 사이를 오가며 살고, 네 아이를 키웠다. 김치를 담그고 머리를 자르고 집에 페인트 칠도 직접 한다. 꾸준히 테니스를 치고, 달리고, 수영한다. 그리고 이제는 글을 쓴다.

어느 하나를 대단히 빨리 배운 것은 없다. 대부분 오래 했다. 서툰 채로 시작해서 조금씩 나아졌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서로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던 것들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공학을 공부하면서 익힌 문제 해결 방식이 집을 고칠 때 사용되고, 아이를 키우며 배운 기다림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 쓰인다. 테니스에서 배운 반복과 실패는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도움이 되고, 두 언어 사이를 오간 경험은 글을 쓸 때 세상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화가이면서 해부학자였고, 공학자였으며, 수많은 분야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특별했던 것은 단순히 많은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다른 분야에서 얻은 생각을 연결해 이전에는 없던 것을 만들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다빈치가 한 말 중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말이 있다.

“가장 큰 기쁨은 무언가를 이해하게 되는 데서 온다”

나는 편하게 사는 것보다 알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왜 히터가 돌아가지 않는지, 공이 왜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지 않는지, 아이는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사람은 어떻게 배우는지. 모르던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순간이 좋았다.

어쩌면 르네상스 인간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 많은 것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전문화의 시대에는 한 가지를 깊이 파는 것이 중요했다. 한 사람이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데는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조금씩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모르는 분야에 들어가기 위한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새로운 개념을 배우고, 질문하고, 다른 분야의 지식을 연결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중요한 사람은 모든 것을 혼자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 호기심을 갖고 오래 배우면서 그것들을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나는 이제 그런 삶이 꽤 마음에 든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많은 우물을 파라는 것이 아니라 여러개의 깊은 우물을 파면서  그 우물이 서로 연결되어 나만의 새로운 것을 만들수 있는 삶을 사는 것도 괜찮다는 말이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지는 못했다.  대신 그 손으로 삶을 만지고 많은 것을 배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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