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내 편이 없는 것 같은 날에도

메리 올리버의 시 「여름날(The Summer Day)」은 세상을 누가 만들었는지를 묻는 거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정작 시인이 오래 바라보는 것은 세상의 비밀이 아니라 손 위에 올라온 메뚜기 한 마리다. 메뚜기가 먹고, 눈을 움직이고, 앞다리로 얼굴을 씻다가 날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그러고는 풀밭에 누워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다가 자신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리고 시의 마지막에서 묻는다.

“Tell me, what is it you plan to do with your one wild and precious life?”

단 한 번뿐인 이 거칠고 소중한 삶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이 질문이 좋다.  이상하게도 이 질문을 생각하면 내가 무엇을 이루어야 할지보다 먼저 내 몸이 생각난다.

우리는 ‘왜 사는가’를 생각하면 대단한 꿈이나 사명을 떠올리기 쉽다. 세상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내가 태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하지만 산다는 것은 그런 거창한 질문 이전에 먹고, 자고, 배설하고, 숨 쉬고,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일에서 시작된다.

틱낫한은 진짜 기적은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이 땅 위를 걷는 것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두 발로 걸어 다닌다는 사실부터 이미 엄청난 수고의 결과다.  그냥 당연해서 잘 모를 뿐. 내가 모르는 사이 내 몸은  쉴 새 없이 나를 살아 있게 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

박사과정 때 바이오센서를 연구하면서 혈액응고와 관련된 단백질인 Protein C를 측정한 적이 있다. Protein C는 혈액이 지나치게 응고되는 것을 억제하는 데 관여한다. 이 단백질이 부족하면 혈액이 필요 이상으로 쉽게 응고되어 혈전 질환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그때 혈액이라는 것이 얼마나 절묘한 균형 위에 있는지를 처음 자세히 공부하게 되었다.  피는 굳어야 한다.  또한 굳어서는 안 된다. 혈관 속에서는 끊임없이 흘러야 하지만 혈관이 손상되는 순간에는 재빨리 응고되어 출혈을 막아야 한다. 너무 늦어도 안 되고, 필요 이상으로 굳어도 안 된다. 내가 일을 하고, 운전을 하고, 밥을 먹고, 깊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몸은 그 미묘한 경계를 알아서 지킨다.

그리고 이것은 몸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심장은 내가 시키지 않아도 뛰고, 폐는 내가 잠든 동안에도 숨을 쉬고, 체온을 유지하고, 상처를 복구하고, 음식물을 소화하고, 몸속으로 들어온 낯선 것들과 싸운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몸에서는 나를 살아 있게 하기 위한 일들이 쉬지 않고 벌어진다.

생각할수록 경이롭다.

그래서 나는 가끔 아무도 내 편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 내 몸을 생각한다. 적어도 내 몸만큼은 쉬지 않고 내 편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알아주지 않아도, 고맙다고 말하지 않아도, 심지어 내가 나 자신에게 실망해 있는 순간에도 몸은 자기 일을 멈추지 않는다. 나를 위하여 수많은 화학반응이 미세한 균형을 맞추며 일어나고 있고 어떤 순간에도 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내가 알지도 못하는 근육들이 조화롭게 일하고 있다.  살아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안다면 한 시도 허투로 쓸 수 없다.

메리 올리버는 단 한 번뿐인 이 소중한 삶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아직 그 질문에 멋진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기 전에 한 가지는 기억하고 싶다. 내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수고가 나를 살아 있게 해주었다는 것.

우리의 삶 자체가 내 몸의 지난한 수고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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