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잡지에서 한 장의 그림을 본 적이 있다. 젊은 여인이 머리에 무거운 짐을 이고 등에 아이를 업은 채 걷고 있었다. 한동안 그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머리 위의 짐이 기울지 않도록 온몸으로 중심을 잡으면서, 등에 업힌 아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또 한 번 몸에 힘을 주었을 것이다. 그림 속 여인의 얼굴보다 먼저 그 몸이 견뎌야 했을 무게가 보였다. 나는 그 젊은 엄마의 고단한 삶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그림을 보다가 문득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시장에서 무나 콩처럼 무거운 것을 많이 사 오는 날이면 커다란 다라이에 그것들을 담아 머리에 이고 집까지 걸어왔다. 그때의 나는 아주 어렸고, 엄마들이란 원래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엄마가 머리에 무엇을 이고 걷는 모습도, 두 손 가득 장바구니를 들고 오는 모습도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이었다.
얼마 전 엄마에게 잡지에서 본 그 젊은 여인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다 문득 엄마도 평생 그렇게 머리에 무거운 것을 이고 살았다는 생각이 나서 장난처럼 엄마의 정수리를 만져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질렀다.
정수리가 평평했다.
엄마는 평생 보글보글 파마를 하고 있어서 나는 한 번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둥글게 솟아 있어야 할 머리 윗부분이 평평했다. 그제야 엄마가 어째서 그렇게 큰 다라이를 머리에 얹고도 걸을 수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머리에 짐을 얹는 일이 몸에 익은 정도가 아니라, 오랜 세월 그 무게를 견디느라 몸 자체가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일곱 살 때부터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 날랐다고 했다. 조그만 여자아이가 자기 몸만큼이나 무거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집까지 걸어왔다. 한 번 나르고 또 나르고. 왜 그렇게 열심히 했느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외할머니가 “아유, 우리 딸래미 잘하네” 하고 칭찬해 주는 말이 좋아서 그랬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아팠다.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는 칭찬 한마디가 좋아서 물을 나르고 또 날랐다. 자기의 아직 여린 머리가 그 무게에 눌리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그 노동이 수십 년 뒤 자신의 몸에 어떤 흔적을 남길지도 모르고 말이다. 외할머니는 마음이 아리면서도 그 작은 도움 조차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 마흔 무렵부터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관절염이 심해 늘 다리가 아팠고 허리 디스크가 있었으며 두통도 자주 찾아왔다. 어느 날에는 입이 돌아가기도 했고 대상포진도 걸렸다. 한 군데가 나으면 다른 곳이 아픈 것처럼 온몸이 돌아가며 엄마를 괴롭혔다. 지금 생각하면 마흔은 아직 한창 젊고 아름다울 나이다. 그런데 내 기억 속 마흔의 엄마는 늘 어딘가 아픈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아픈 다리로 밥을 하고, 허리가 아픈데도 장을 보고, 몸이 성치 않은데도 집안일을 했다. 부지런해서이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 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엄마에게 노동은 취미도 자기계발도 아니었다.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엄마는 우리 세대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육체노동을 견디며 살아왔다. 그래서 그토록 딸들이 공부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공부해서 성공하라는 말에는 어쩌면 더 깊은 뜻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희만큼은 나처럼 몸을 갈아 넣으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머리에 물동이를 이지 않아도 되고, 아픈 몸을 끌고 나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말이다.
나는 요즘 ‘수고하는 삶’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쓴다. 일부러 손으로 하고, 몸을 움직이고, 조금 불편하게 살아보는 일이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엄마의 평평한 정수리를 만지고 나서 한 가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모든 수고가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어떤 수고는 사람을 자라게 하지만, 어떤 수고는 그저 사람의 몸을 닳게 한다. 그러니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것은 ‘무조건 열심히 사는 법’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수고는 기꺼이 감당하고, 어떤 수고는 이제 그만 내려놓아도 되는지 구별할 줄 아는 지혜일 것이다.
엄마의 머리에 놓여 있던 물동이는 이제 내려놓아도 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수고는 생명을 억지로 갉아먹지 않는 수고이다.

Leave a comment